1. 운명의 하루가 시작된 그 한 문장
1968년 4월 4일 오후 6시 1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로레인 모텔 306호 발코니에서 단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 한 발은 마틴 루서 킹 박사의 39년 생애를 멈추게 했고, 같은 날 밤 미국 100개가 넘는 도시를 거대한 슬픔과 분노로 뒤덮었다. 그러나 그 총성이 울리기 정확히 19시간 전, 그는 같은 도시 메이슨 템플 교회 강단에서 마치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한 듯한 한 문장을 남겼다. “저는 산 정상에 다녀왔습니다.” 운명의 하루는 그 문장에서 이미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2. 4월 3일 밤, 비 오는 멤피스로 향한 비행기
사건 전날인 4월 3일, 마틴 루서 킹은 뉴욕에서 멤피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두 달 가까이 이어진 멤피스 환경미화원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다시 이 도시를 찾는 길이었다. 그러나 비행기는 폭파 협박 때문에 출발 직전 한 차례 모든 짐을 다시 검사받아야 했다. 멤피스에 도착한 그는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그날 저녁 메이슨 템플 교회 집회에는 대리로 동료 랠프 애버나시를 보내려 했다. 그러나 교회로 갔던 애버나시는 굵은 비를 뚫고 도착한 청중이 오로지 킹 박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려왔다. 킹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교회로 향했다.
3. 메이슨 템플 강단 위 40분
그날 밤 메이슨 템플 교회에는 약 2천 명의 시민이 빗속을 뚫고 모여 있었다. 강당의 천장에서는 천둥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폭우가 거셌다. 마이크 앞에 선 킹은 원고 없이 즉흥으로 약 40분간 연설을 이어갔다. 그는 이집트 탈출, 노예제 폐지, 1955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1963년 워싱턴 행진까지 13년의 민권운동 흐름을 차근차근 짚었다. 그러고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청중을 천천히 둘러본 뒤 자신이 받아온 살해 협박들과 죽음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4. “산 정상에 다녀왔습니다”
연설의 절정에서 그는 모세가 약속된 땅을 본 산 정상의 비유를 꺼냈다. 자신도 산 정상에 올라 약속된 땅을 내려다보았으며, 자신이 그 땅에 함께 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한 민족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그곳에 도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마지막 문장을 마치는 순간 그의 다리는 약간 비틀거렸고, 동료 애버나시 목사가 그를 부축해 자리에 앉혔다. 강당은 약 1분간 폭우 소리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그날 밤 그 연설을 들은 사람들 중 많은 이가 “그가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는 회고를 평생 남기게 된다.

5. 4월 4일 아침과 오후의 일상
다음 날인 4월 4일, 멤피스 시내 멀버리 거리의 로레인 모텔 306호에는 늦은 평화가 흘렀다. 새벽에야 잠든 킹은 동생 A D 킹, 동료 앤드루 영, 제시 잭슨과 늦은 아침을 같이 했고, 오후 회의에서는 다음 주 워싱턴 빈민 행진 계획을 논의했다. 점심으로는 그가 좋아하는 메기 요리가 나왔다. 그날 그는 평소보다 자주 농담했고, 베개 싸움을 하다 침대를 흐트러뜨리기도 했다. 측근들은 그가 오랜만에 가벼워 보였다고 훗날 회고했다. 한 측근은 “마틴이 그렇게 즐거워 보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고 적었다.
6. 건너편 하숙집의 그림자
같은 시각, 로레인 모텔 건너편에 위치한 베시 브루어 하숙집의 2층 공용 욕실에서는 한 남자가 사냥용 소총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가명으로 그 하숙집에 들어와 모텔 발코니가 정면으로 보이는 방을 요구했으나 그 방을 얻지 못했고, 결국 복도 끝 공용 욕실에서 모텔을 정확히 조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욕실 욕조 위에 올라서서 좁은 창문 너머로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발코니의 움직임을 살피기 시작했다. 두 건물 사이의 거리는 약 60미터였다.

7. 오후 6시 1분 그 순간
오후 6시가 되자 킹은 그날 저녁 식사를 위해 멤피스의 한 동료 목사 집으로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그는 발코니 난간 앞에 잠시 서서 주차장 아래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운전사 솔로몬 존스는 “오늘 밤은 쌀쌀할 테니 코트를 챙기시죠”라고 외쳤고, 킹은 “고맙다, 솔로몬”이라 답하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정확히 오후 6시 1분, 단 한 발의 총성이 멀버리 거리에 울려 퍼졌다. 동료들이 위를 올려다봤을 때 킹은 이미 발코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한 발의 총탄은 그의 오른쪽 턱을 통과해 척추를 손상시켰다.
8. 11분의 침묵과 7시 5분 사망 선언
앤드루 영이 가장 먼저 그의 맥박을 짚었고, 랠프 애버나시는 그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제시 잭슨은 1층 주차장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구급차는 통상보다 늦은 11분 후 도착했고, 곧장 인근 세인트조지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의료진이 30분간 응급 처치를 시도했으나 척수 손상이 심각해 회복은 불가능했다. 의사는 오후 7시 5분 공식 사망을 선언했다. 사망 직후 병원 복도에서 무릎을 꿇은 애버나시는 “내 친구가 가버렸다”는 단 한 문장만 반복했다고 한다.

9. 그날 밤 100개 도시
오후 7시가 조금 지나 사망 소식이 라디오와 텔레비전 정규 방송을 끊고 전국으로 퍼졌다. 그날 밤 미국 100개가 넘는 도시에서 추모와 분노의 행렬이 동시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워싱턴 디시에서는 백악관에서 다섯 블록 떨어진 14번가 일대에 큰 화재가 났고, 새벽까지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시카고 서부 슬럼가에서도 11명이 사망했다. 디트로이트, 볼티모어, 캔자스시티에서도 이튿날까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린든 존슨 백악관 수장은 그날 밤 9시 군 동원령을 내렸고, 약 5만 8천 명의 주방위군이 전국에 배치되었다. 미국은 단 하룻밤 사이에 두 개의 얼굴을 갖게 되었다. 한쪽은 깊은 슬픔, 다른 한쪽은 거대한 분노였다.

10. 애틀랜타의 코레타 스콧 킹
같은 저녁, 애틀랜타 자택에서 다섯 자녀와 함께 있던 부인 코레타 스콧 킹에게 첫 전화가 걸려왔다. 첫 통보는 그저 “남편이 다쳤다”는 짧은 말이었다. 그녀는 곧장 멤피스행 비행기를 알아보았지만, 공항으로 향하던 길에 두 번째 전화로 사망 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코레타는 자녀들 앞에서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녀는 막내 버니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는 가족이니까 함께 견뎌야 한다”고 짧게 말했다. 사흘 후 그녀는 멤피스 환경미화원 파업 행진을 남편 대신 직접 이끌었다. 검은 베일을 쓰고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은 채 멤피스 시내를 행진하는 그녀의 모습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11. 4월 5일 새벽의 정적
4월 5일 새벽이 되자 멤피스 시내 멀버리 거리에는 다시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로레인 모텔 306호 발코니 난간은 노란색 폴리스 라인으로 두 번 감싸여 있었다. 동이 트기 전 한 청소부가 발코니 바닥의 핏자국을 닦기 위해 다가갔지만, 끝내 손에 든 걸레를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같은 시각 워싱턴의 백악관 집무실에서는 린든 존슨 백악관 수장이 4월 7일을 국가 애도일로 선포하는 성명을 직접 손으로 수정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도시가 불타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 시대의 마지막 줄이 조용히 그어지고 있었다.

12. 4월 8일 멤피스 침묵 행진
사망 나흘 뒤인 4월 8일, 코레타 스콧 킹은 다섯 자녀 중 세 자녀와 동료들의 손을 잡고 멤피스 시내 침묵 행진을 직접 이끌었다. 약 4만 2천 명이 단 한 마디 구호도 외치지 않은 채 6킬로미터를 함께 걸었다. 같은 날 미국 전역에서는 비행기 운항이 일시 중단되었고,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모두 연기되었다. 사흘 뒤인 4월 9일 애틀랜타 에버니저 침례교회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약 30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운구 행렬은 노새 두 마리가 끄는 농민 마차 위에 관을 싣고 이동했다. 그가 평생 함께 서고자 했던 가난한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향한 마지막 메시지였다.
13. 그 한 발이 멈춘 것과 멈추지 못한 것
그날의 총성은 한 사람의 39년 생애만 멈춘 것이 아니었다. 1955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시작되어 13년간 이어진 비폭력 민권운동, 그 거대한 흐름의 가장 환한 등불 하나가 그날 저녁 6시 1분에 꺼졌다. 그러나 그가 전날 밤 남긴 한 문장은 지금도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살아 있다. “저는 산 정상에 다녀왔습니다. 약속된 땅을 보았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곳에 가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민족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약속된 땅에 도달할 것입니다.” 운명의 하루는 끝나도, 그 하루가 남긴 약속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1968년 4월 4일 멤피스의 황혼은 한 시대의 마지막 줄이자, 동시에 다음 시대의 첫 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