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수리가 착륙했다
1969년 7월 20일 오후 4시 17분 40초, 협정 세계시 기준으로 달착륙선 이글이 달 표면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닐 암스트롱의 목소리가 38만 킬로미터를 건너 지구에 도달했다. 휴스턴, 이곳은 고요의 바다. 독수리가 착륙했다. 그 순간 전 세계 6억 명이 흑백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역사가 만들어지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보았다.

2. 아폴로 11호의 출발
아폴로 11호는 1969년 7월 16일 오전 9시 32분,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 케네디 우주센터 39A 발사대에서 새턴 5 로켓으로 이륙했다. 발사를 지켜본 인원만 100만 명 이상이었다. 승무원은 세 명이었다. 선장 닐 암스트롱은 첫 번째 달 착륙이 임무인 것을 알았지만 성공을 확신하지 않았다고 후일 밝혔다. 달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은 달 표면에서 성찬식을 거행할 성찬포도주를 몰래 챙겨 왔다.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는 달 착륙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임무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약 38만 4천 킬로미터였고, 이동에는 3일이 걸렸다.

3. 1201 경보 — 착륙을 결정한 8초
7월 20일, 이글이 달 표면을 향해 하강을 시작했다. 착륙 예정 지점까지 약 7분을 남겨두고 갑작스러운 경보음이 울렸다. 1201 경보였다. 이글의 온보드 컴퓨터가 처리 용량을 초과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임무 통제 센터는 8초 안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착륙을 계속하면 컴퓨터가 중요한 순간에 멈출 수 있었다. 중단하면 달 착륙 임무 자체가 이번에는 실패하는 것이었다. 27세의 임무 통제관 스티브 베일스가 계속 진행을 결정했다. 그 결정은 옳았다. 이글은 하강을 이어갔고, 주 연료가 약 30초분만 남은 상태에서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암스트롱은 착륙 예정 지점이 바위밭임을 발견하고 수동 조종으로 더 안전한 지점을 찾아 내려앉는 과정에서 연료를 더 소모했다.

4. 닐 암스트롱의 첫 걸음
착륙 후 6시간 39분이 지난 7월 21일 02시 56분 15초, 협정 세계시 기준으로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왼발을 내딛었다. 그가 남긴 말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중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입니다.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선 순간,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이외의 천체 위에 서 있는 인간이었다. 달 표면의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이었다. 암스트롱은 나중에 달 표면의 토양이 예상보다 단단했으며 발이 생각보다 깊이 빠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5. 달 표면에서의 2시간 31분
암스트롱에 이어 올드린도 달 표면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이 달 표면에서 보낸 시간은 2시간 31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두 사람은 21킬로그램의 달 암석과 토양 샘플을 채취했고, 지진계와 레이저 반사경 등 과학 실험 장치를 설치했다. 올드린은 달 표면에서 미리 가져온 성찬포도주와 웨이퍼로 조용히 성찬식을 거행했다. 두 사람은 이글 착륙선 다리에 금속 플라크를 부착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1969년 7월, 지구에서 온 인간들이 처음으로 달 위에 발을 디뎠다. 우리는 모든 인류를 위해 평화롭게 왔다.

6. 마이클 콜린스 — 역사상 가장 고독한 인간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 표면을 탐사하는 동안, 마이클 콜린스는 달 궤도에서 사령선 컬럼비아를 홀로 조종했다. 그는 달의 뒷면을 지날 때마다 지구와의 통신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 시간은 매 궤도마다 약 47분이었다. 47분 동안 콜린스와 나머지 인류 사이에는 달 전체가 있었다. 당시 달 표면에 있던 암스트롱과 올드린을 포함해 지구에 있는 수십억 명 — 모든 인류가 달 반대편에 있었고, 콜린스만이 뒷면에 있었다. 그는 이후 인터뷰에서 그 고독이 불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평온하고 자신에 차 있었다고 회고했다.

7. 소련의 마지막 시도 — 루나 15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비행하는 동안, 소련의 무인 탐사선 루나 15도 달 궤도에서 착륙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소련의 계획은 루나 15를 달에 착륙시켜 암석 샘플을 채취한 뒤 지구로 귀환시킴으로써, 미국 우주비행사들이 손으로 채취한 샘플보다 먼저 달의 암석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유인 달 착륙보다 먼저 달 샘플을 가져오면 상징적인 부분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루나 15는 아폴로 11호가 달을 출발하기 약 2시간 전인 7월 21일 오후, 달 표면에 충돌하며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소련은 수십 년간 루나 15의 존재와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8. 지구로의 귀환
7월 21일, 달 표면에서의 임무를 마친 이글이 상승하여 컬럼비아와 도킹했다. 세 사람이 다시 합류했다. 7월 22일 달 궤도를 떠나 지구를 향했다. 7월 24일 오후 12시 50분, 태평양의 목표 해역에 사령선이 착수했다. 해군 함정 호넷이 세 사람을 구조했다. 이후 세 사람은 달에서 가져온 미생물로 인한 생물 오염을 우려해 21일간 격리 시설에 수용되었다. 격리가 끝난 뒤 그들을 기다린 것은 뉴욕 맨해튼의 대규모 환영 퍼레이드와 전 세계의 열광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아폴로 11호 임무를 창조의 새벽 이후 지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주간이라고 평가했다.

9. 아폴로 프로그램의 유산
아폴로 11호 이후 인류는 총 6번 달 착륙에 성공했다. 1969년부터 1972년 아폴로 17호까지, 총 12명이 달 표면을 밟았다. 달에서 가져온 암석 샘플은 달이 약 45억 년 전 지구와 다른 천체의 충돌로 형성되었다는 거대 충돌 가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 아폴로 프로그램에는 NASA, 주요 방위산업체, 대학 연구기관을 합해 약 40만 명이 참여했다. 프로그램의 총 비용은 2020년대 가치로 환산하면 약 2,800억 달러에 달한다. 아폴로가 가져온 기술적 부산물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통신, 의료 기기, 소재 기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10. 달에 남겨진 발자국
1969년 7월 20일 달 표면에 남겨진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달에는 공기도, 바람도, 물도 없어서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앞으로 수천만 년이 지나도 그 발자국은 달 표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한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냈다는 가장 오래 지속될 물리적 증거다. 케네디의 약속, 40만 명의 헌신, 그리고 세 남자의 용기가 만들어낸 그 발자국은 인류의 유산이다. 여러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 아폴로 11호의 장면은 무엇인가요? 댓글로 나눠주세요.

10. 달에 남겨진 발자국
1969년 7월 20일 달 표면에 남겨진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달에는 공기도, 바람도, 물도 없어서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앞으로 수천만 년이 지나도 그 발자국은 달 표면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한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냈다는 가장 오래 지속될 물리적 증거다. 케네디의 약속, 40만 명의 헌신, 그리고 세 남자의 용기가 만들어낸 그 발자국은 인류의 유산이다. 오늘날 미국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 중국의 달 탐사 계획, 민간 우주 기업들의 달 여행 계획이 다시 인류를 달로 이끌고 있다. 1969년 7월 20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달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아폴로 11호에 대한 여러분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댓글로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