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하루 EXCAVATION №2026

핼리팩스 대폭발 1917: 전신기사 빈 코울먼이 300명을 살린 마지막 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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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명을 살린 한 통의 전보

1917년 12월 6일 오전, 캐나다 핼리팩스의 한 철도역에서 한 남자가 전신 키를 두드렸다. 그가 보낸 짧은 전보는 승객 300명을 태운 열차를 역 밖에 멈춰 세웠다. 그러나 정작 그 전보를 친 남자, 철도 배차원 빈 코울먼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같은 시각, 핼리팩스 항구에서는 인류가 핵무기를 만들기 전까지 인간이 일으킨 가장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도시의 절반이 단 몇 초 만에 형체를 잃었고, 약 2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는 9천 명에 달했다. 이 글은 그 운명의 하루, 24시간을 시간의 순서대로 따라간다. 그리고 그 잔혹한 하루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킨 한 사람의 선택을 되짚는다.

전쟁의 항구, 핼리팩스

1917년의 핼리팩스는 평범한 항구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그때, 이 도시의 좁은 물목은 대서양을 건너 유럽의 전장으로 향하는 배들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매일 수백 척의 배가 무기와 탄약, 식량을 싣고 이 항구를 드나들었다. 항구의 안쪽에는 배들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넓은 만이 있었고, 바다로 나가려면 반드시 좁은 물목을 지나야 했다. 이 병목 구간에서는 배들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조심스럽게 교행해야 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이 작은 도시의 인구는 빠르게 불어났고, 항구를 중심으로 노동자와 군인, 그 가족들이 촘촘히 모여 살았다. 특히 항구와 가까운 리치먼드 지구에는 목조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도시 전체가 전쟁 물자로 붐볐고, 부두에는 언제나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그날 아침에도 항구는 여느 때처럼 분주했다. 좁은 물길 안으로 두 척의 배가 서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노르웨이 화물선 이모 호와 프랑스 화물선 몽블랑 호였다. 두 배의 선장은 서로 먼저 지나가려 뱃머리를 틀었고, 그 짧은 판단의 엇갈림이 도시의 운명을 가르게 된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폭탄

문제는 몽블랑 호의 화물이었다. 이 배는 며칠 전 뉴욕에서 은밀히 출항했는데, 선창에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 실려 있었다. 포탄의 원료가 되는 강력한 폭약 피크르산이 무려 2,300톤 넘게 배 밑바닥을 채우고 있었고, 그 위로는 TNT와 인화성 벤졸, 면화약이 갑판까지 빼곡히 쌓여 있었다. 전시라 이런 위험 화물을 실은 배는 붉은 깃발을 달아 경고해야 했지만, 적 잠수함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몽블랑 호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은 채 항구로 들어왔다. 배 전체가 사실상 바다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선원들은 이 사실을 알았기에 항해 내내 담배 한 개비조차 피우지 못했고, 작은 불씨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 배가 지금, 다른 배와 충돌 직전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항구의 그 누구도 이 배가 무엇을 싣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운명을 가른 20분: 충돌과 화재

오전 8시 45분, 두 배는 결국 뱃머리를 맞대고 충돌했다. 충격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이모 호가 뒤로 물러나면서 긁힌 금속에서 튄 불꽃이 갑판에 새어 나온 벤졸에 옮겨붙었다.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겁에 질린 몽블랑 호의 선원들은 배가 곧 폭발하리라는 것을 알고 서둘러 구명보트로 뛰어내렸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노를 저으며 사람들을 향해 배에서 떨어지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프랑스어로 외쳤고, 영어를 쓰는 항구의 사람들은 그 다급한 경고를 알아듣지 못했다. 선원들은 반대편 해안까지 노를 저어 겨우 몸을 피했지만, 정작 위험을 알려야 할 도시를 향해서는 아무 말도 전할 수 없었다.

구경거리가 된 죽음

경고가 통하지 않자, 오히려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불타는 배는 흔치 않은 구경거리였다. 사람들은 창가로, 부두로 몰려들어 검은 연기를 뿜으며 타는 배를 지켜보았다. 항구 노동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부두 끝으로 걸어 나왔고,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창가로 모여들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창문에 매달려 손가락으로 배를 가리켰다. 일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어서 창가로 와서 신기한 광경을 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항구에서 일하던 인부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 누구도 자신들이 거대한 폭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창가에 붙어 선 이 자세는 곧 수많은 사람의 시력을 앗아가는 원인이 된다. 이 무지가 사망자 수를 끔찍하게 키우게 된다. 오직 한 사람, 철도역의 배차원만이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빈 코울먼, 죽음의 항구로 돌아가다

철도 배차원 빈 코울먼은 위험을 알아채고 이미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한 뒤였다. 몽블랑 호에서 탈출한 한 선원이 배가 곧 터진다고 알려 준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가지 사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곧 승객 300명을 태운 열차가 이 역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던 것이다. 이대로라면 그 열차는 폭발의 한복판으로 곧장 달려들게 된다. 코울먼은 걸음을 멈췄고, 다시 죽음의 항구를 향해 자신의 통신기 앞으로 되돌아갔다. 떨리는 손으로 그는 전신 키를 두드렸다. 열차를 멈추라는, 탄약선이 불타고 있다는,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전보일 것이라는 짧은 메시지였다. 그 전보는 인근 역들에 전달되어 열차를 멈춰 세웠고, 동시에 다른 지역에 사고를 알리는 최초의 신호가 되었다. 신호가 끊긴 것은 그로부터 몇 초 뒤였다.

도시를 지운 6초

돌이켜보면 그 재앙은 수많은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였다. 두 배가 하필 좁은 물길에서 정면으로 마주쳤고, 충돌의 불꽃이 하필 가장 인화성이 강한 벤졸에 옮겨붙었으며, 불타는 배가 하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리치먼드 지구 앞으로 떠밀려 가 멈췄다. 어느 하나만 어긋났어도 피해는 훨씬 작았을 것이다. 구경꾼들이 몰려드는 사이, 배 밑바닥의 피크르산은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소방대가 막 현장에 도착해 호스를 연결하던 오전 9시 4분, 마침내 몽블랑 호가 폭발했다. 그 순간 배는 산산조각이 났고, 도시의 절반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목격한 사람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폭발이 남긴 것

폭발의 위력은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 힘은 TNT 약 2,900톤에 맞먹었고, 이후 핵무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가 일으킨 가장 거대한 폭발로 기록되었다. 충격파는 시속 1,0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도시를 휩쓸었고, 반경 2킬로미터 안의 건물들은 종잇장처럼 무너져 내렸다. 몽블랑 호의 거대한 닻 조각은 3킬로미터 넘게 날아가 떨어졌고, 지금도 그 자리에 기념물로 남아 있다. 바다에서는 거대한 해일이 솟구쳐 해안 마을을 덮쳤고, 오랫동안 그곳에 살던 원주민 공동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폭발의 순간 발생한 빛과 열은 너무나 강렬해서, 항구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형체조차 남기지 못했다. 폭발음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들렸다고 전해진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북적이던 리치먼드 지구는 한순간에 잿빛 벌판으로 변했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검은 비와 눈보라

폭발 직후, 하늘로 솟구쳤던 파편들이 불덩이가 되어 도시 위로 쏟아졌다. 사람들은 이 끔찍한 광경을 검은 비라고 불렀다. 무너진 집의 난로와 화덕에서 옮겨붙은 불길이 곳곳에서 도시를 다시 태우기 시작했고, 잔해에 갇힌 사람들이 다시 위험에 빠졌다.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잔해 속에서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헤맸다. 그런데 하늘은 마지막 잔인함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다음 날, 40센티미터가 넘는 폭설이 도시를 뒤덮었다. 부상자를 옮기고 잔해를 파헤치던 구조의 손길마저 눈보라 속에서 얼어붙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영하의 추위 속에서 밤을 보내야 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추위라는 또 다른 적과 싸워야 했다.

보스턴의 열차, 그리고 남겨진 이름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은 하나같이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창가에서 배를 구경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폭발과 함께 깨진 유리 파편에 눈을 다쳤고, 그날 하루에만 수백 명이 시력을 잃었다. 이 비극은 훗날 눈 부상 치료와 재활 의학이 발전하는 뼈아픈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도시의 병원이 마비된 가운데, 이웃 도시 보스턴은 소식을 듣자마자 그날 밤 의료진과 구호 물자를 실은 열차를 보냈다. 보스턴의 의료진은 임시 병원을 세우고 며칠 밤을 새워 가며 부상자를 돌봤으며, 다른 도시들도 잇따라 구호의 손길을 보탰다. 폐허가 된 도시를 다시 세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서로를 붙들며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 갔다. 눈보라를 뚫고 달려온 그 열차는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이 인연은 두 도시의 오랜 우정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뒤늦게 한 남자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전신기를 놓지 않았던 배차원, 빈 코울먼의 이야기였다.

마치며: 자리를 지킨다는 것

빈 코울먼의 마지막 전보는 승객 300명을 태운 열차를 역 밖에 멈춰 세웠다.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가 지킨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그 열차의 승객들은 평생 그날의 은인을 잊지 못했다. 오늘날 그의 이야기는 캐나다에서 위기의 순간 자신의 임무를 다한 영웅의 상징으로 전해지며, 학교와 책을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되풀이해 이야기되고 있다. 핼리팩스는 지금도 그날을 잊지 않는다. 폭발 직후 가장 먼저 달려와 준 보스턴을 위해, 이 도시는 100년이 넘도록 매년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스턴에 보내고 있다. 해마다 12월이면 보스턴의 광장에는 핼리팩스가 보낸 거대한 나무에 불이 켜지고, 100년 전의 그 밤이 조용히 되새겨진다. 그것은 가장 어두운 하루에도 사람은 사람을 구한다는 조용한 약속이다. 핼리팩스 대폭발은 재난의 규모로 기억되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진짜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킨 한 사람의 조용한 선택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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